한국 공정무역 2.0으로 넘어갈수 있을까

2014. 1. 13. 13:44

한국 공정무역 2.0으로 넘어갈수 있을까?


2000년대 초반 태동해 십 여년 간 성장해온 한국 공정무역. 이제는 ‘공정무역’ 을 들어본 소비자의 수도 제법 많아졌고, 공정무역 원두를 사용하는 카페나 공정무역 원료를 사용하는 화장품 같은 것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공정무역 단체들은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 ‘제 값 주기’ 와 같이 직관적이고 소비자 중심적인 캠페인을 위주로 영역을 넓혀왔을 뿐, 그 안의 속살까지 모두 보여주진 못했다. 말하자면 ‘공정무역 1.0’ 이었던 것인데, 이유는 공정무역이 너무 ‘어렵고 복잡’ 하기 때문이었다. 공정무역의 가치 사슬안에는 다양한 국가의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또 빈곤, 무역, 농업, 인권, 소비자운동, 먹거리, 시장경제와 같이 굵직한 이슈가 그물처럼 복잡하게 엮여있다. 사회에 ‘공정무역’ 네 글자부터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것들을 처음부터 다짜고짜 들이밀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도 ‘공정무역 10년차’다. 공정무역의 사슬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자리잡은 한국이 공정무역을 통해 세계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미쳐야 하는지, 좀 더 깊이있는 고민과 논의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지난 2013년 12월 18일, 만해 NGO교육센터에서는 의미있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사회적경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운동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 공정무역이 2.0으로 가는 길목에서 ‘쓰고 질긴’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이 토론회는 한국 공정무역의 씨앗을 뿌린 아름다운가게의 공정무역 브랜드 ‘아름다운커피’ 가 공정무역 전문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독립 출범하는 것을 기념해 마련된 자리로, 손혁상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교수(국제개발협력 분야), 이해영 국제통상연구소 소장(시민사회운동 분야), 장승권 성공회대 경영학부 교수(사회적경제 분야)가 발제를 진행하였으며 아름다운커피 김진환 사무처장,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국제개발협력 분야), 허남혁 전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시민사회운동 분야), 이원재 전 한겨레 경제연구소 소장(사회적경제 분야)이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토론회에서 나온 질문 중 아름다운커피뿐만 아니라 한국 공정무역 분야 전체에 약이 될 질문 몇 가지를 추려보았다. 한국 공정무역은 과연 이 질문들에 답을 제시하며 2.0으로 무사히 진화할 수 있을까?

 

 


사진제공: 아름다운커피

 


1. 공정무역 커피 단체가 스타벅스만큼 커진다면, 그 때도 ‘착하게’ 운영될 수 있을까?

공정무역 업체는 아직 시장에서 ‘소수’다. 하지만 공정무역 운동은 기존의 무역 방식의 ‘모두’ 혹은 ‘대다수’를 공정무역으로 대체하여 저개발국 생산자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다면, 만약 그 목표가 이루어져서 공정무역 상품을 파는 생협이 이마트만큼 커지고, 공정무역 커피가 스타벅스나 맥심 커피와 어깨를 겨룬다면 어떻게 될까? 그 때는 결국 ‘자사의 이윤 극대화’ 를 위해 움직이게 되지 않을까? 혹은 다국적기업이나 대기업이 공정무역 방식을 전격 도입한다면, 공정무역 업체는 문을 닫아야 할까? 이원재 토론자는 이와 같은 ‘주류화’ 의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 버몬트 주에서 출발한 유명 아이스크림 회사 벤 앤 제리는 청소년을 고용하는 일종의 노동통합 실험을 많이 한 사회적기업이었지만, 사업이 크게 확장되면서 유니레버에 합병되었다. 동물 실험 반대, 인권, 환경, 공정무역 등에 관한 캠페인에 앞장섰던 화장품 회사 더바디샵 역시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나서 로레알에 인수되었다. 물론 이들은 여전히 기존의 소셜 미션을 유지하며 추구하고 있지만, 그들의 모기업은 소셜 미션과는 무관한 다국적기업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들이 앞으로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원재 토론자는 벤 앤 제리와 더바디샵이 주류에 ‘편입’되었지만, 그 사이에 이들의 활동(청소년 관련 활동, 노동 통합형 사회적기업, 동물 실험 금지 등)이 시장에서 일반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사회적기업이 소셜 미션을 추구하면서 사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을 때, 처음에는 소수의 주장이었던 그들의 소셜 미션이 ‘상식’ 으로 퍼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 또한 사회적기업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원재 토론자는 한국 공정무역 업계 역시 스스로 미션을 추구하는 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 프런티어’로서 앞서 실험을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성훈 토론자는 ‘주류화’ 에 대해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만약 ‘주류’가 흙탕물이라면, 주류에 편입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류를 ‘어떻게 정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

한국 공정무역에는 두 가지 질문이 모두 유효할 듯 하다. 캠페인과 사업을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어떻게 ‘사회 프런티어’의 역할을 할 것인가. 그리고 국제 무역 질서와는 별개로, 어지러운 한국의 유통 구조 안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고 그 안의 비효율과 부조리를 해결해갈 것인가.

 

 


사진제공: 아름다운커피

 


2. ‘무역’의 문제를 다루는만큼, 공정무역 단체들이 FTA같은 무역 협정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FTA, TPP 등과 같은 무역 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가장 피해보는 부분은 농업 분야다. 전 세계적으로도 저개발국 가족 소농들이 자유무역 체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허남혁 토론자는 자유무역으로 발생하는 먹거리 주권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많은 국가에서 공정무역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그 부분이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계 110개 국 400명의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국제기구(FAO, GEF, UNDP, UNEP, 유네스코, 세계은행, WHO)가 모여 농업과학기술의 변화를 평가한 <개발을 위한 농업과학기술 국제평가(IAASTD)> 보고서에서는 기존 농업 정책과 과학 기술 부분의 문제점, 자유무역으로 인해 저개발국의 빈곤과 기아가 가중되는 경향을 다루고, 대안으로 생태적 농업 가족인 소농의 보호를 장려하고 자유무역을 제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선진국 쪽에서는 소비자 차원의 대안 먹거리, 로컬 푸드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고, 한편에서는 비아 캄페시나로 대표되는 식량주권을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세계는 자유무역에 기반한 글로벌 푸드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공통의 문제의식 안에서 먹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연대를 통해 이를 바꾸어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파리, 뉴욕, 밴쿠버 등 주요 대도시들은 로컬 푸드와 공정무역 논의가 포함된 도시 먹거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공정무역 활동가들이 앞장서서 무역협정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무역과 시장개방, 거대 자본이 점령한 글로벌 유통 구조 속에 우리의 먹거리를 무방비 상태로 맡겨둘 것이 아니라 ‘서울 먹거리 계획’과 같은 것을 논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공정무역 단체들이 학교 급식 네트워크, 먹거리 교육, 도시농업, 농민운동, 슬로푸드 등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 아닐까? 허남혁 토론자의 이러한 질문은 예민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긴 하지만, 지속가능한 먹거리 생산-소비 시스템을 추구하는 공정무역 업체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3. 국제적 농업 이슈인 ‘랜드그랩(Land Grabbing)’ 에 대해 한국 공정무역 단체들은 어떤 입장인가?

국제 농업 분야에서 요즘 이슈가 되는 문제 중 하나로 글로벌 랜드그랩(저개발국 농지를 헐값에 빼앗는 문제)이 있다. 허남혁 토론자는 옥스팜의 Grow 캠페인(랜드그랩, 기후 변화, 식량 가격 폭등, 소농 지원 문제 등 4가지 하위 포커스가 있다)을 예로 들며 글로벌 랜드그랩 문제에 대해 한국 공정무역 단체들은 어떤 입장인지 물었다. 최근 해외 농업 개발 혹은 농지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한국 역시 ‘가해자’ 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당한 거래를 통한 저개발국 생산자 보호를 추구하는 공정무역이 이 문제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공정무역 단체들도 단순히 공정무역 거래량을 늘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랜드그랩과 같은 글로벌 농업 이슈에 시민 사회와 깨어있는 소비자들의 힘을 모아 명확한 목소리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생산자와 농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국내외를 아우르는 넓은 범위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가능한 먹거리 생산-소비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허남혁 토론자의 이 질문들은 당장은 이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앞으로 한국 공정무역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한번쯤은 고민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Photo(cc) via British Province of Carmelites / flickr.com

 


공정무역 운동의 역사가 오랜 유럽과도 다르고, 사회적경제와 주류 경제의 만남이 일찍부터 시도된 미국과도 다른 한국의 공정무역. 시절도 하수상하고, 경제 상황마저 날이 갈수록 움츠러 들지만, 명실상부한 글로벌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경제 규모의 성장에 어울리는 세계 시민의 품격을 갖추는 것도 빠트릴 수 없다.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단체라면, 공정무역에 관심을 둔 소비자라면 2014년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착하다니까’ 를 넘어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해 저 세 가지 질문에 한 번쯤 자신만의 답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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